철학과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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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이란 무엇인가? 알맹이가 들어 있는 소리와 말이다. 철학이란 사상의 한 가닥이다. 그러기에 철학도 알맹이가 든 참 소리요 참 말이다. 이 땅위에는 지금 "사상의 빈곤", "철학의 빈곤"을 고발하는 목소리가 이 구석 저 구석에서 들려온다.
  지금 이 땅위에는 온갖 소리와 말들의 홍수가 범람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상이 빈곤하며, 철학이 빈곤하다고 한다. 소리와 말은 많으나, 소리같은 소리, 말같은 말이 매우 적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알맹이 없는 말은 빈말이며, 말다운 말이 아니다. 그런 빈말은 귓전을 때리는 허튼 소리 일 뿐, 정녕 사상이나 철학일 수가 없다.
 한편, 생각하면, 사상의 빈곤이나 철학의 빈곤을 말하는 것, 이것이 또한 허튼 소리가 아닌가하고 되물어 볼 수도 있다. 옛부터 내려오는 동서양의 선철들의 고전들이 우리 앞에 즐비하게 쌓여 있으며, 서양의 최근 사상과 철학 이론들이 우리의 귓전에 물밀듯 밀려 오는데도, 사상과 철학의 풍요함 대신에 빈곤을 말하다니, 어디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하고.
 그렇다. 우리에게 책이 부족한 게 아니다. 책안에 나열된 기호 속에 파뭍힌 관념의 다발은 우리에게 너무나 풍성하다. 그것들은 기념비처럼 우리앞에 우뚝 서 있거나, 박물관에 모셔 놓은 골동품같이 관상의 대상으로 우리 앞에 놓여있다. 한마디로 그러한 관상의 대상으로서의 관념은 우리에게 하나의 물건일 뿐이다. 그런 물건은 우리에게 풍성하다.
 그러면 우리에게 결핍된 사상과 철학은 어떤 것인가? 우리는 밥을 먹는다. 그래야 우리는 산다. 밥은 결코 관상의 대상이거나 장식품이 아니다. 그것 없이는 우리가 존재할 수 없다. 우리의 삶을 지탱시켜주는 힘, 그것은 밥으로부터 나온다. 우리에게 결핍된 사상과 철학은 저 밥과 같은 사상과 철학이다.
 인간의 삶은 문제들에 관한 응답의 몸짓으로 엮어진다. 사상과 철학은 그러한 문제들에 대한 대답의 대화록이다. 문제의 과녁을 맞춘 생각들, 그것이 바로 알맹이가 든 말이요 소리며 그것이 바로 사상과 철학이다. 우리에게 철학이 필요한 것은, 우리의 삶이 바로 문제에 대한 응답으로 꾸며지기 떄문이다. 죽음이란 이런 의미에서 문제에 대한 무응답이다. 죽음은 영원한 침묵을 남겨놓을 뿐이다. 그러기에 살아 있는 자, 살고자하는 자는 대답해야 한다. 그숱한 고뇌에 찬 난문들에 대답해야 한다. 그러기에 참 사상, 참 철학은 사람을 살리는 밥이다. 그것은 살과 피를 우리에게 만들어 줄 원자제이다.
 이제 때는 다가오고 있다. 가로대꾼이나 마구잡이꾼들이 세상을 판치는 시대는 지나가고, 새 시대가 우리 앞에 천천히 다가 오고 있다. 제 목소리로 제 곡조의 노래를 불러야 살 수 있는 때가 다가오고 있다. 남의 사상의 단순한 숭배자나 소비자가 아니라. 자기의 언어로 자기의 생각을 만들어내는 사상의 생산자가 되어야 할 때가 다가오고 있다. 이것이 오늘의 역사의 요청이다. 이 역사의 부름에 응답하는 것, 그것이 바로 오늘을 사는 이 땅위에 생각하는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이다.

 우리의 삶은 그동안 "가로대"와 "마구잡이" 사이에서 넘나들어왔다. 앵무새처럼 "아무개 가로대"를 주문처럼 읊어왔다. 아니면, "시끄럽다, 집어치워라"를 연발하며, 오직 하면 된다는 뚝심 하나만 믿고 밀어붙이는 마구잡이들에게 떠밀려 살아왔다.

우리가 「철학과 현실」을 창간하는 까닭은, 바로 그러한 역사적 요청에 응답하고저 생각하는 사람들 모두에게 새밥짓기 연습의 마당을 마련하고저 함이다. 우리는 이 마당에서, 삶의 현장에서 울고 웃는 이 땅의 알맹이들과, 학문의 여러 칸막이 안에서 머리를 쥐어짜고 있는 여러 색깔의 전문가들과, 가슴을 탁터놓고 말을 주고 받게 되길 소망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이 마당이 진리에 이르는 다리의 직분을 하게 되길 희망한다.